토론 주제: 모방과 희생
조던 피터슨(이하 '피터슨')이 먼저 모방과 희생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제시하며 토론을 시작함.
1부: 모방
피터슨: 피아제(Piaget)의 모방 이론
- 피터슨은 장 피아제가 제라르(Girard)만큼이나 모방을 중시했다고 언급함.
- 피아제는 모방이 잘못될 수 있는 폭력적인 측면에 집중하지 않았음. 대신 모방을 통해 사회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다소 낙관적인 관점을 가짐.
- 피아제의 관점은 경제적 진보가 아닌, 심리적/사회적 조직화 방식으로서의 모방에 초점을 맞춤.
- 게임과 위계질서: 피아제는 '게임'에 집중함. 아이들은 모방을 통해 사회적 위계질서를 조직함.
- 발달 단계: 3-4세 아이들이 '집안일 놀이'를 할 때, 상호 동의 하에 목표(가정 환경의 추상화 및 모델링)를 향해 서로를 상호 모방함.
- 상위 원칙 (자발성): 이 놀이가 성립하려면, 양측이 자발적으로 목표에 동의하고 역동적으로 학습해야 한다는 상위 원칙이 존재함.
피터슨: 제라르와 메타게임
- 피터슨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모방에 기반한 게임'들이 존재하며, 이것이 바벨탑처럼 흩어질 수 있다고 지적함.
- 이러한 게임들은 더 높은 차원의 원칙 하에 조직됨.
- 메타게임의 종류:
- 권력
- 쾌락주의적 자기 만족
- 기독교적 메타게임: 자발적 자기 희생.
- 피터슨은 이 기독교적 메타게임이 기존의 영토(권력, 쾌락주의)를 근본적으로 재편했으며, 대체 불가능하다고 주장함.
- 이교도 세계와의 비교: 로마, 그리스 등 이교도 세계는 본질적으로 '권력'과 '쾌락주의'에 기반함 ("내가 할 수 있다면, 나에게 권리가 있다").
- 기독교는 이를 뒤집었으며, 이는 성숙의 과정과 일치함.
- 피터슨은 모방 게임이 초월적인 목표를 향하지 않으면, 시기심 가득한 지위 경쟁으로 타락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함.
피터 틸(이하 '틸'): 제라르의 반론 (군중의 광기)
- 틸은 제라르가 피아제 같은 학자들이 모방을 대규모로 과소평가하고 '세탁'했다고 비판했음을 지적함. 그들은 모방의 통제 불가능한 폭력성을 무시함.
- 피터슨은 피아제가 정신병리학자가 아니라 규범적 발달 연구자였다고 반박함.
- 틸은 제라르의 직관은 소위 '정상 사례'보다 '극단적 사례', 즉 '군중의 광기'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함.
- 계몽주의 vs. 성경:
- 계몽주의 합리론: 말콤 글래드웰의 '군중의 지혜'처럼, 군중은 현명하며 민주주의는 합리적이라고 봄.
- 성경적 계시: 성경에서 군중은 '항상' 틀리고 미쳐있음 (예: 바벨탑).
- 틸은 "언제 '군중의 지혜'가 '군중의 광기'로 변하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며, 제라르적(그리고 기독교적) 직관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더 대표적인 방식으로 광기로 변한다고 봄.
2부: 희생
틸: 기독교는 '반희생적(Anti-Sacrificial)'이다
- 틸은 이 문제의 핵심을 '희생'에 고정시키지 않겠다고 말함.
- 그는 제라르의 주장을 인용하며,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반희생적이다"라고 주장함.
- 그리스도의 희생 해석:
- 전통 신학(대속적 속죄)과 달리, 그리스도의 죽음은 '마지막 희생'임. 즉, 그리스도가 희생했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희생할 필요가 없음.
- 이는 '타인의 희생' vs '자신의 희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제라르는 다르게 강조함.
- 그리스도의 미덕은 자신을 희생한 행위(사자에게 먹히는 영웅처럼)에 있지 않음.
- 겟세마네의 기도: 그리스도는 겟세마네에서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함. 이는 희생이 훌륭하거나 필요한 일이라고 본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임을 보여줌.
- 그리스도의 핵심 특징은 '타인을 희생시키기를 거부'하는 것임.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 천사를 부르지 않음)
- 구약 vs. 신약:
- 틸은 이미 구약의 호세아 등 일부 예언자에게서 "신은 희생이 아니라 자비를 원한다"는 반희생적 직관이 나타난다고 지적함.
- 구약의 율법은 성전 중심의 정교한 '희생적 법률' 체계임.
- 그리스도는 이를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가지 계명으로 대체함.
- 틸은 이 두 가지만 지키면 구약의 율법(희생)이 더 이상 필요 없으며, 심지어 (구약에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말함.
피터슨: 희생은 '성숙'이다
- 피터슨은 이 문제를 심리학적, 사회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함.
- 인간의 급진적 특징 중 하나는 '희생을 치르려는 의지와 능력'임.
- 미성숙 vs. 성숙:
- 미성숙할수록 (예: 2세) 분노, 굶주림 등 단기적 만족에 초점을 맞춘 생물학적 시스템의 지배를 받음.
- 성숙해진다는 것은(대뇌피질 발달), 시간적 인지 범위가 '내일, 다음 달, 내년'으로 확장됨을 의미함.
- 현재의 행동을 미래를 위해 조절하는 것, 즉 '즉각적인 만족을 희생'하는 것이 성숙의 정의임.
틸: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합리적' 행동이다
- 틸은 피터슨의 설명에 반박함. "그것이 희생적인 움직임인가, 아니면 합리적인 움직임인가?".
-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합리적임. (예: 집을 사기 위해 돈을 저축하는 것).
- 틸은 그것이 합리적일수록, '희생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함.
피터슨: 합리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 피터슨은 '단순한 합리성'만으로는 충동(변연계 주도)을 조절할 수 없다고 반박함.
- 합리성 자체는 '무엇이 합리성을 구성하는가'라는 더 상위의 개념(희생할 가치가 있는 것) 안에 캡슐화되어야 함.
- 단기적 쾌락을 포기하고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며, 이는 순전히 합리적인 움직임이 아님.
- 사회적 성숙 (차례 지키기): 아이들이 사회화되기 위해 '차례를 지키는 것'을 배우는 것 또한 '희생'임. 기본값은 "항상 내 차례"이기 때문.
틸: '희생'이라는 언어의 위험성 (학계의 예)
- 틸은 '희생'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함.
- 학계의 보수주의자 예시:
- 우파 성향의 사람들이 "박사 학위자를 더 양성해서 학계 시스템에 잠입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틸은 회의적임.
- 틸은 이것이 '비합리적인 희생'이라고 비판함.
- 우파 성향의 젊은이가 박사 학위를 받고 완전히 고용 불가능하게 되는 것은 합리적 희생이 아니라, '희생'이라는 언어에 혼동된 '어리석은 선택'임.
- 피터슨의 토론토 대학 사직:
- 틸은 피터슨이 토론토 대학을 떠난 것을 '반희생적 움직임'이라고 규정함.
- 피터슨은 학계가 강요하는 "어리석은 희생" (예: 정신을 희생하는 것, 그들의 규칙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음.
- 틸은 이것이 "올바른 일"이었다고 평가함.
- '희생적' 움직임은 불행하더라도 "더 큰 선을 위해"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었을 것임.
피터슨: 희생 대상의 전환 (직업 vs. 혀)
- 피터슨은 틸의 분석에 동의하면서도, 자신은 "머무르기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고 말함.
- 피터슨은 자신의 행동을 다르게 규정함: "나는 내 혀를 희생할 의사가 없었다".
- 따라서 그는 혀(진실을 말하는 단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직업과 임상 경력을 '희생'한 것임.
틸: 그것은 합리적이고 '반희생적'인 선택이었다
- 틸은 피터슨의 행동이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청중에게 다가가는 등 "훨씬 더 낫고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재반박함.
- 피터슨은 학계의 '도덕화하는 좌파' 가치 시스템(학계가 가장 중요하다는)이 자신을 통제하도록 허용하지 않았음.
- 틸은 피터슨의 행동을 "기독교적이거나 니체적일 수 있지만, 매우 좋은 방식의 '반희생적'인 것"이라고 결론지음.
피터슨: 희생의 병리적 측면
- 피터슨은 '희생'이라는 용어 자체가 혼란스러울 수 있음을 인정함.
- 그는 틸이 제라르의 관점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에, 희생 과정의 '병리적인 끝'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함.
- 피터슨은 자신이 잃은 것(직업)보다 얻은 것(현재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고 말함.
- 희생의 역설 (아브라함과 이삭):
-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으면 그것이 진정한 희생인가?"라는 질문을 던짐.
- 성경(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은 이런 역설로 가득 차 있음. 신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희생하라고 요구하고, 아브라함은 기꺼이 따르지만, 그 결과로 아들을 '되찾게 됨'. 이는 희생의 모호성을 보여줌.
틸: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닌 '이삭의 믿음'
- 틸은 자신을 "재건되지 않은 제라르주의자(unreconstructed Girardian)"라고 칭하며, 희생에 대해 회의적인 초기 제라르의 입장을 고수한다고 밝힘.
- 틸은 구약은 신약을 통해 해석되어야 한다는 기독교적 편향을 인정함.
- 그리스도의 말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 진정한 믿음을 가진 아이 = 이삭:
- 틸은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구약의 한 아이, 즉 이삭(Isaac)을 가리킨다고 주장함.
- 산으로 올라갈 때, 아브라함은 "신이 무언가를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허구의 이야기를 함.
- 아브라함의 믿음: 아들을 '희생해야 한다'고 믿음. 틸은 이를 "키르케고르나 읽은 어른의 망상적 믿음"이라고 비판함.
- 이삭의 믿음: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믿음.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적 믿음'임. 즉, 신은 폭력적인 신이 아니라 사랑의 신이며, '희생이 필요 없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
- 틸은 신학자들이 항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모방하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는 '이삭의 믿음'을 모방하라고 말한다고 주장함.
- 결론 (기독교는 반희생적이다):
- 틸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역사적 사건이자 약속으로 믿음.
-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고 영생을 얻기 위한 '합리적인 거래' 또는 '현명한 선택'임.
- 이것을 '희생'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그 성격이 다름. (예수가 "내 멍에는 가볍다"고 말한 이유).
- 만약 이것이 융(Jung)적인 원형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희생'이 높은 가치가 되겠지만, 틸은 정통 기독교 메시지는 매우 '반희생적'이며 '비희생적(non-sacrificial)'이라고 해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