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담 내용 상세 정리
도입: 진보의 둔화와 대담의 주제 (피터슨의 서론 및 틸과의 대화 시작)
- 피터슨은 지난 50년간 물리적 세계에서의 진보가 둔화되었으며, 우리가 종말론적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언급하며 대화를 시작. 과학기술의 어두운 측면을 지적.
- 틸의 핵심 주장 소개: 물질적 세계(디지털 세계가 아닌)에서의 진보는 1960년대 이후 실질적으로 느려짐. 그 이유로는 과학적 노력에 대한 종말론적 두려움, 히피적인 내면 탐구로의 전환, 추상 세계로의 도피 등이 있음. 낮은 수준의 모방적 시기심(mimetic envy)에 기반한 지위 경쟁에 대한 회의론도 틸 사상의 중요한 부분.
- 틸은 약 20년간 이러한 진보 둔화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고 밝힘. AI 발전과 치매 연구 부진처럼 다양한 분야의 진보를 비교 측정하는 것은 복잡하다고 인정.
- 서구 세계는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여러 전선에서 빠르게 과학기술적 진보를 이루었으나, 1970년경을 기점으로 둔화되었다고 주장.
- 컴퓨터, 소프트웨어, 인터넷, AI 등 '비트(bits)'의 세계에서는 진보가 지속되었지만, 물리적/물질적 세계인 '원자(atoms)'의 세계에서는 진보가 훨씬 적었다고 구분함.
원자의 세계 vs. 비트의 세계, 그리고 경제적 영향
- 틸이 스탠퍼드 학부생이었던 1980년대 후반에는 물리학, 화학, 기계공학, 항공우주공학, 원자력공학 등 '원자의 세계'에 속하는 분야들은 전망이 좋지 않았음. 전기공학(반도체) 정도가 괜찮았고, 컴퓨터 과학이 유일하게 성공적인 STEM 분야였지만, 초기에는 수학이나 물리학을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덜 엄밀한 분야로 여겨졌다고 회고.
- 컴퓨터 과학 분야는 환상적인 기업들을 탄생시키고 산업 시대에서 정보 시대로의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지만, 광범위한 경제적 복지 향상으로 반드시 이어진 것은 아니라고 지적함. (예: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부모 세대만큼 잘 살지 못할 수 있음 - 경제적 정체 또는 쇠퇴)
진보 측정의 어려움과 상식적 정체감
- 현대 후기의 초전문화는 전체 그림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듦 (예: 암 전문가들은 50년간 5년 안에 암을 정복할 것이라고 말해왔고, 끈 이론가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주장).
- 경제적 지표로 볼 때 진보는 둔화되었으며, 직관적으로도 지난 50년간 초음속 항공이나 교통수단 등 물리적 이동 속도에서 더 빠른 발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정체감을 느낌.
정체에 대한 정치적 직관과 금기시되는 아이디어
- 틸은 금기시되어 논의할 수 없는 아이디어일수록 옳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정치적 직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함.
- 예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밥 로플린 교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정부 돈을 훔치거나 사기성이거나 점진주의적인 연구를 한다고 주장했다가 연구비 지원이 끊기고 제자들이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하게 됨. (고온 초전도체 분야 논문 5만 편 중 25편만이 과학을 발전시켰다고 주장)
- '과학의 정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금기시되는 현상은 그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한다고 주장. 이는 진보가 전혀 없었다거나, 있었던 진보가 모두 좋았다거나, 진보에 대한 두려움이 정당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부연.
문화적 전환: 아폴로에서 우드스톡으로 (외부 세계에서 내부 세계로)
- 진보 둔화와 동시에 문화적 변혁이 일어났다고 설명함. 아폴로 우주 계획(1969년 7월 달 착륙)이 마지막 위대한 기술적 프로젝트였고, 3주 후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열림. 이는 과학기술적 진보가 멈추고 히피들이 국가를 장악한 시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함.
- 외부 세계 탐구(outer space)에서 내면세계(inner space)로의 전환이 일어남 (요가, 명상, 환각제, 비디오 게임, 정체성 정치 등).
- 마르크스주의는 객관적 물질 현실에 관심을 둔 반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는 내면세계로 전환하며 경제 성장과 기본적인 경제적 번영에 대한 질문을 멈추었다고 비교.
정체의 이유: 과잉 결정과 위험한 기술
- 정체의 '이유'에 대한 질문은 항상 과잉 결정된다고 언급 (위험 회피 사회, 여성화, 과도한 규제와 관료주의 등).
- 더 큰 요인 중 하나는 많은 과학기술이 위험하다고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 특히 군사적 맥락에서 이중 용도(dual-use) 성격을 가짐.
- 나폴레옹 전쟁, 콜트 리볼버, 다이너마이트, 제1차 세계대전 등은 순진한 진보적 서사를 약화시켰고, 베이컨적 과학 프로젝트는 핵무기가 개발된 로스앨러모스에서 절정에 달하면서 동시에 종결되었다고 봄.
- 사회가 핵무기의 의미를 내재화하는 데 약 25년이 걸려 1970년대에 이르렀고, 이는 점점 더 강력한 열핵폭탄을 만드는 외부 세계 대신, 환각제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거나 환경주의를 통해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짐. 변화가 종말론적 차원을 가지므로(나쁜 쪽으로의 변화),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분석.
비활성적 진보(비트의 세계)와 종말론적 배경
- 비트의 세계(인터넷 등)에서의 진보는 폭탄이나 무기를 직접 만들지 않기 때문에 '비활성적'으로 간주되어 허용되었다고 설명함. 그러나 인터넷상의 아이디어도 때로는 현실로 전환될 수 있음 (예: 트위터/X).
- 인터넷은 폭력성이 통제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졌지만, 그것조차도 과도하게 느껴질 때가 있음.
- 현대 후기의 종말론적 배경: 모든 사소한 공격(microaggression)이 아마겟돈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 정체와 위험 회피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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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특징: 느려진 진보와 종말론적 시대 (피터슨과 틸의 대화 재개)
- 틸은 자신이 현재 우리가 전후 시대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려 한다고 밝힘. 100년 전보다 느리게 진보하고 있으며, 1913년의 세계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우리가 종말론적 시대를 살고 있다고 느낀다는 점이라고 강조. 과학기술은 어두운 측면을 가지며 인류가 스스로 파는 함정일 수 있다고 언급. 그레타 툰베리의 '지구는 하나뿐'이라는 주장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라고 덧붙임.
진보의 구체적 본질과 그 위험성
- 문제가 되는 것은 진보의 '구체적인 본질'이라고 지적함: 열핵무기, 환경에 급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 위험한 생물학 무기(우한 연구소?), 잠재적으로 폭력적이고 위험한 AI (단순한 초지능이 아니라 드론과 같은 무기와 결합된 AI). jamming을 극복하기 위해 드론에 AI를 탑재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불안감을 준다고 말함.
둔화의 이유 요약 (피터슨의 정리) 및 관료주의
- 피터슨은 틸의 주장을 요약: 물리적 현실에서의 진보는 1960년대에 정점을 찍음. 그 이유는 종말론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 심리적 내면 여정이나 디지털 세계와 같은 추상으로의 도피, 그리고 디지털 영역은 여전히 탐험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
- 피터슨은 추가적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법적/관료적 틀이 과학기술을 따라잡으면서 물리적 혁신을 억압했지만 디지털 공간은 열어두었다는 해석을 제시함 (예: 소련 붕괴 후 장애물이 없던 우즈베키스탄의 급속한 산업 발전).
틸의 반론: 시대를 초월한 것이 아닌, 세계사적 특수성 (열핵무기)
- 틸은 피터슨의 '관료주의가 따라잡았다'는 설명이 시대를 초월한 일반론("항상 일어나는 일")처럼 들린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이야기는 더 '일회적이고 세계사적인 특수성'을 지닌다고 반박함.
- 과거의 발명품(질병 치료제, 기계 등)은 규제 반발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발명을 장려했지만, '열핵무기'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녔으며, 이것이 아동 교육(모험 이야기 대신 닥터 수스), 인간 형성 방식,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의 시각을 바꾸었다고 주장함.
과학, 기술, 그리고 기독교: 얽힘, 대체재, 또는 책임 전가?
- 과학기술과 기독교는 어떻게 얽혀 있었는가? 상호 보완적 관계(신의 창조물을 이해)였는가, 아니면 대체재(신 없이 지상 천국 건설, 예: 벤저민 프랭클린, 콩도르세의 급진적 생명 연장론)였는가?
- 초기 근대(17-18세기)는 반성서적 색채를 띠었음. 프랜시스 베이컨은 철저한 유물론적 무신론자로, 과학 발전을 위해 종교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해석.
- 후기 근대에는 무신론적 자유주의자들이 오히려 반과학적이 됨 (무서운 기술을 다루는 할리우드 영화). 리처드 도킨스는 1789년 이전 계몽주의 시대의 화석과 같고, 그레타 툰베리가 현시대를 더 잘 대표한다고 봄.
- 후기 근대의 반기독교적 주장은, 애초에 이 위험한 프로젝트(창세기: "땅을 정복하라")를 시작한 것 자체가 신의 잘못이라는 논리로 변형됨.
- 불변하는 것은 기독교의 신이 항상 비난받는다는 사실이지만, 초기 근대와 후기 근대에서 그 이유가 정반대라는 점은 흥미롭다고 지적 (17-18세기: 과학을 늦춘 죄. 20-21세기: 과학을 시작하고 가속화한 죄).
과학을 위한 형이상학적 전제 (피터슨의 주장)
- 피터슨은 초기 과학이 수도원에서 대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뿌리를 언급하며, 과학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비과학적이고 신앙에 기반한 공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함:
- 우주는 이해 가능하다.
-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 가능하다.
- 성실한 탐구는 개념적/실용적 지식의 증가를 낳는다.
- 이러한 지식의 증가는 선하다.
- 더 깊은 전제: 지식 추구가 근원적인 기독교적 정신(ethos) 안에 포섭될 때 선할 수 있음.
- 베이컨과 함께 이러한 형이상학적 전제에 대한 의존성이 의문시되기 시작했을 수 있다고 봄. 도킨스는 자신의 과학에 형이상학적 가정이 없다고 부인.
- 문제점: 이러한 정신에서 벗어나면(지식과 진보 자체를 정의하는 정신에서 벗어나면) 과학의 루시퍼적 요소가 극도로 커질 수 있다고 경고 (종말론적 반발).
제라르적 관점: 기독교적 인간학, 희생양 메커니즘, 그리고 과학의 발흥 (틸의 설명)
- 틸은 자신을 철저한 '제라르주의자(Girardian)'라고 밝히며 르네 제라르의 사상을 소개함.
- 과학 혁명이 이슬람이나 유대교(법 중심의 일신교) 세계가 아닌 기독교 세계에서 일어난 이유는 단순한 신학적 형이상학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적 인간학(Christian anthropology)' 때문일 수 있다고 시사함.
- 제라르: 성경은 신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도 말해줌. 폭력과 희생양의 문제가 중요. 유대교와 기독교는 희생 이야기를 무고한 희생자의 관점에서 전달하며, 이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점진적 해체를 이끎.
- 희생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다른 설명, 즉 과학적 설명을 찾도록 강요됨.
- 마녀사냥의 종식: 과학이 마법이 불가능함을 증명해서가 아니라, 집단적 희생양 만들기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유사하다는(마녀들은 상대적으로 무고함) 인식이 생겼기 때문. 이는 자연적 설명을 찾도록 강요함 (예: 역병의 원인을 우물에 독을 탄 유대인 탓으로 돌리지 않게 됨).
- 세일럼 마녀사냥: 초기 설교는 여성들이 악마와 계약했다고 비난했지만, 집단적 광기를 깨달은 후에는 악마가 세일럼 전체 공동체에 들어갔다는 설교로 바뀜. 희생양 만들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과학은 자연적 설명을 찾는 방법이 됨.
탈신성화, 연금술, 그리고 물질 속의 신비 (피터슨의 관점)
- 피터슨은 기독교가 이교 세계를 파괴하면서(신들이 더 이상 널리 퍼져 있거나 인과적이지 않게 됨), 세상에서 마법이 사라지고 일신교적 신에게 통합되었다고 설명함.
- 융(Jung)의 관점: 기독교 혁명이 진행되면서 연금술적 신화가 확산되었는데, 이는 물질세계에 구원적 능력을 지닌 신비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었음.
- 세상에서 영적인 것들이 사라지면서, 다른 인과적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특히 선구적인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함. 이것이 기독교가 이교 세계에 대해 승리한 필연적 결과인지 의문을 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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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비판, 해체, 그리고 모방 이론 (틸의 설명)
- 마르크스: 모든 사회 비판은 종교 비판에서 시작됨. 틸의 부연: 예수 그리스도가 사회적/종교적 제도를 해체하며 이 과정을 처음으로 시작함. 이는 해체적 성격을 가지며, 이교적 제도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듦.
- 제라르의 심리학적 차원: 인간의 모방(mimesis)은 매우 깊고 중요하며 간과되어 왔음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모방 능력에서 다른 동물과 다름). 유인원은 유인원을 모방하므로, 우리는 유인원보다 더 유인원 같다고 할 수 있음.
- 모방은 문화 전달(언어)에 긍정적.
- 욕망을 모방할 때 위험해짐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면 폭력 발생).
- 고대 사회의 법/신성한 법은 모방을 막기 위한 것 (예: 카스트 제도/길드,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따름).
- 후기 근대: 제도들이 해체되면서 문화 이전의 유인원처럼 모방할 자유가 생김. 모방은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들지만 자연적 장벽이 없어 종말론적 차원을 가질 수 있음.
초월성의 상실과 모방 경쟁 (십계명)
- 초월적 준거를 상실하면 모방 경쟁으로 이어짐.
- 제라르의 십계명 해석: 첫 번째(유일신)와 마지막(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 계명이 가장 중요.
- 위를 보는 것(초월자)을 멈추면 주위(이웃)를 보게 되고, 이는 군중의 광기, 시기심으로 이어짐.
- 후기 근대(자유주의적 무신론 사회)는 사람들이 주위를 많이 둘러보며 건강하지 않은 지위 경쟁을 벌이는 사회. 이는 기독교의 파생물이지만(이러한 것들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동시에 그 반대이기도 함.
- 제라르의 모방 이론: 덜 모방적일 수는 없지만, 역할 모델을 선택할 수는 있음 (예: 그리스도).
아인 랜드 대 제라르; 치료와 모방
- 아인 랜드: 나쁜 사람들은 모방하고(간접 경험자), 위대한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 동자(아리스토텔레스적 신)임. 제라르적 비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음. 인간은 깊이 사회적이고 발달적임 (아이들은 엄청나게 모방적).
- 제라르: 모방을 제거할 수는 없음. 모방적인 것에 대한 심리치료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음 (더 집중하게 되고, 모방적인 자신을 수용하며 자기 숭배로 변질). 제라르의 대답은 "교회에 가라"는 것.
피아제의 모방, 게임, 그리고 상위 원리 (피터슨의 설명)
- 피아제 또한 모방을 중요시했지만, 폭력적 측면보다는 우리가 모방을 통해 사회적/심리적으로 어떻게 조직되는지에 집중함 (예: 아이들의 '집 놀이'와 같은 게임).
- 게임은 목표를 향한 상호 모방을 포함하며, 자발적 동의와 역동적 학습에 의해 규제됨.
- 세상에는 무한한 수의 모방에 기반한 게임(잠재적인 바벨탑들)이 존재함.
- 종교적 틀(특히 기독교)은 이러한 게임들을 상위 원리 아래 조직함.
- 모방 게임을 조직하는 메타게임들: 권력, 쾌락주의적 자기만족.
- 기독교적 메타게임: 자발적 자기희생. 이는 급진적이고 대체 불가능하며 구체화되어야 함. 이교/로마/그리스 세계(권력/쾌락주의)를 뒤집으며 성숙과 일치함.
- 틸의 요점: 모방 능력은 게임이 시기심에 찬 지위 경쟁으로 변질될 때 잘못되며, 초월적인 것을 향하지 않는 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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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사례, 군중의 지혜 대 광기 (틸의 피터슨 피아제 언급에 대한 답변)
- 제라르는 피아제가 모방을 과소평가/미화했으며, 걷잡을 수 없는 폭력의 차원을 무시했다고 볼 것이라고 말함. '정상적인' 사례보다 극단적인 사례(군중의 광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
- 피아제는 말콤 글래드웰처럼 군중의 지혜를 믿는 경향이 있다고 평함.
- 계몽주의적 합리주의(군중은 종종 현명하고 민주주의는 좋다)와 성서적 계시(군중은 항상 틀리고 미쳤으며, 바벨탑, 만장일치) 사이의 기본적인 차이를 지적.
- 군중의 지혜가 광기로 변하는 지점은 언제인가? 제라르적/기독교적 직관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훨씬 대표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봄.
반희생으로서의 기독교 (틸의 주장)
- 틸은 희생을 핵심 특징으로 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음.
- 제라르에 따르면 기독교는 반희생적이며, 희생으로부터 멀어지는 움직임임.
- 그리스도의 죽음은 마지막 희생이며, 우리가 더 이상 희생할 필요가 없게 만듦.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기를 거부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특징. 예: 겟세마네에서 천사들을 부르지 않음).
- 구약 선지자들 (호세아: "하나님은 희생이 아닌 자비를 원하신다").
- 구약의 율법은 희생적(성전 제사)이지만, 그리스도는 이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로 대체함. 이를 행하면 구약의 율법이 필요 없어짐 (심지어 베이컨/돼지고기를 먹을 수도 있음).
성숙과 합리성으로서의 희생 (피터슨의 주장 및 틸과의 논쟁)
- 피터슨은 인간의 급진적 특징 중 하나가 희생할 의지와 능력이라고 주장함.
- 성숙이란 미래에 집중하고 현재 행동을 조절하는 것(미래 안정을 위해 즉각적 만족을 희생)이라고 정의.
- 틸은 이것이 희생적인지 합리적인지 반문함. 미래를 볼 수 있다면 합리적이지만, 합리적이라면 그다지 희생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
- 피터슨은 단기적 충동 조절은 단순한 합리성 이상을 필요로 하며, 합리성 자체도 어떤 틀 안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 무엇을 위해 쾌락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가?
- 성숙은 또한 사회 집단 내에서의 조화/협력/경쟁을 포함함 (예: 차례 지키기를 배우는 것 – 희생).
- 틸은 2-3세 아이에게 희생이라는 언어로 가르치지 않으며, 차례를 지키지 않을 경우 빠르고 즉각적인 결과가 따른다고 반박. 증거 기반의 비합리적 부분만 남는다면 그런 희생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함.
- 틸의 예시: 우파 성향 학자들이 취업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박사 학위를 따고 학계에 잠입하려는 것은 비합리적 희생이며, 희생이라는 언어에 혼동된 것이라고 비판.
- 피터슨이 토론토 대학을 떠난 것은 반희생적 행동이었다고 평가함. 학계가 요구하는 어리석은 희생(정신을 희생하거나 어리석은 규칙을 따르는 것)을 거부한 것. 희생적 행동은 '더 큰 선'을 위해 머무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함.
무엇을 희생했고 무엇을 얻었는가; 좋은 의미의 반희생 (피터슨과 틸의 대화)
- 피터슨: 자신의 혀(진실 지향적 말은 선한 질서를 세운다는 기독교적 요소)를 지키기 위해 직업/임상 경력을 희생했다고 말함.
- 틸: 피터슨이 지금 하는 일이 훨씬 훌륭하고 중요하다고 평가. 만약 직업을 희생하고 아무런 전망이나 청중이 없었다면 그것이 비합리적 희생이었을 것이라고 함. 더 많은 청중에게 다가가기로 한 결정은 합리적이었으며, 도덕주의적인 좌파 학계가 자신을 통제하도록 두지 않았다고 평가. 피터슨의 행동을 기독교적이거나 니체적이지만, '좋은 의미에서 반희생적'이라고 묘사함.
희생이라는 언어; 이삭의 믿음 대 아브라함의 믿음 (피터슨과 틸의 대화)
- 피터슨: '희생'이라는 언어가 혼란스러운 것은 아마도 틸이 제라르적 관점(희생의 병리적 측면에 집중)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 자신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크다고 말함. 성서적 역설(아브라함과 이삭: 아들을 희생하려 했으나 아들을 돌려받음)을 언급.
- 틸 (70-80년대의 제라르주의자로 희생에 더 회의적): 구약을 신약을 통해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 그리스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져라."
- 구체적 예: 이삭의 믿음. 아브라함은 자신이 희생해야 한다고 믿었지만(어른의 망상적 믿음), 이삭은 하나님이 희생 없이 해결할 방법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음(참된 기독교적 믿음). 하나님은 폭력적이지 않다고 강조.
- 아브라함의 믿음이 모범으로 여겨지지만, 그리스도는 어린아이(이삭)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한 점이 흥미롭다고 지적. 이삭의 믿음은 희생에 대한 관점에서 매우 다르다고 설명함.
육체적 부활과 합리적 거래 (틸의 설명)
- 틸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역사적 사건이자 약속으로 믿는다고 밝힘.
-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나쁜 일을 겪을 수 있지만, 영혼을 구하고 영생을 얻기 위한 합리적 거래라고 설명.
- 문자 그대로의 영생을 믿는다면, '희생'은 다른 성격을 띰("멍에는 가볍다"). 정통 기독교 메시지는 매우 반희생적/비희생적이며, 현명한 선택이라고 해석함.
결론 및 추가 논의 예고 (피터슨의 마무리) (1:18:46 - 끝)
- 피터슨은 데일리 와이어 채널에서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안내하며, 주제로 '어린아이의 믿음', '틸이 어두운 면에 집중하는 기질적 성향', '기독교', '종말론적 첨예함' 등을 언급하며 마무리.